가톨릭 소개
가톨릭이란
1. 가톨릭신자들은 누구를 믿는가 ?
가톨릭(Catholic)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한자어권에서는 천주교(天主敎)라 불리웁니다. 하늘의 주인이신 분을 믿는 종교라는 뜻이지요. 우리들은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에서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들은 현세의 사물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들은 죽음을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께서만이 우리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으시며,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습니다.
2. 왜 그리스도인인가 ?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자유의지를 남용한 나머지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자꾸만 죄를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것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구원에로 이끌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구세주(救世主)라 부릅니다. 구세주라는 명칭은 희랍어로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뜻),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을 크리스챤 혹은 그리스도인, 한자어권에서는 기독교인(基督敎人)이라 부릅니다.
3. 그리스도교(기독교)에 왜 이리 분파가 많은가?
처음부터 분파가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12사도들의 교회인 가톨릭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내려오다가 1530년 개혁주의자 독일인 루터(1483~1546)가 교황권을 거부하고 루터교회를 설립함으로써 분파가 이루어졌습니다. 1534년에는 영국왕 헨리8세가 중혼(重婚) 문제로 가톨릭에서 이탈하여 영국국교로서 성공회를 세웠습니다. 1560년에는 교황제도가 아닌 신도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장로회 제도를 주장한 칼빈의 뒤를 이은 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를 창립하였고, 1739년에는 영국 성공회 사제인 요한 웨슬레가 감리교회를 세웠습니다. 1901년에는 미국인 카우만이 일본에서 감리교 창설자 웨슬레의 정신을 따르며 성결교회를 세웠습니다.
전 세계에는 350여 교파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100여개 교파가 있는데,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교파에서 분열된 것입니다.
아무리 분파가 많다하여도 그 근본뿌리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들이 모두 일치할 수 있도록 사랑과 관용과 대화의 자세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1)믿음의 생활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할 때 신자(信者)라는 말을 씁니다.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교신자 생활의 근본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보살펴주심을 믿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시련 중에 우리의 도움이신 하느님께서 기도를 드립니다.
2) 희망의 생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믿음의 생활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유한하고 불완전하여 죄를 짓고, 또 언젠가는 죽을 육신을 지니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이러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리라 희망합니다.
3) 사랑의 생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그렇습니다. 사랑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알아보는 표지입니다. 또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당에 오랫동안 나간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믿음, 희망, 사랑의 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앙인의 생활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언제 가톨릭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가?
동지사일행으로 북경에 파견된 이승훈이 북경천주교회를 방문하여 스스로 세례받기를 청하여 천주교신자가 된 후에 1784년 봄에 귀국하였습니다. 그 후 이벽과 합심하여 전교하고 세례를 주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 신앙공동체가 탄생하였습니다. 4차례의 큰 박해를 견디어내고 1886년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6. 가톨릭과 조상제사
한때 가톨릭에서도 우리나라의 제사를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금지했었습니다. 제사금지 때문에 1791년에는 죽음에까지 이른 이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상제사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한 결과 우리 조상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고 조상께 대해 감사를 드리는 미풍양속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에 대한 공경과 감사와 정성을 다하는 것이 자손으로서의 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들은 돌아가신 조상의 묘 앞에서 또는 고인의 사진을 모신 상이나 명복을 비는 예식에서 절을 할 수 있고, 제사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차릴 수 있습니다.
7.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
첫째, 우리는 모든 신앙인의 모범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인의 생활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함으로써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님이 오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루카 1,38).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말대로 ‘정녕 복되신 분’(루카 1,35)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자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요한 19,27). 그 이후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는 공동체를 이루어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 모시면서 공경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일부 개신교교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성모 마리아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일뿐, 그 어떤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즉 우리를 직접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닙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주실 수 있는 위치에 계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주시라고 간청드리는 것입니다.
8. 가톨릭신자가 되려면
가톨릭(Catholic, 보편적)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자,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입니다. 또한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전부 다 동일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시는 분이면 누구든지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찾아가시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각 성당에서는 예비자입교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가톨릭신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을 환영하고 신자공동체에로 받아들이는 예식입니다.
예비자입교식 후에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교리교육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교리교육기간 동안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등등 가톨릭신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내용들을 공부하면서 신앙심을 키워가게 됩니다.
그리고 예비자교리교육은 무료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계시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어떠한 성당이 있는지는 본 홈페이지 “성당/공소” 메뉴를 열어보시면 주소와 찾아가는 길(약도) 그리고 연락처를 아실 수 있습니다. 성당 사무실을 방문하시어 자세한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비자 교리교육’을 받기 어려우신 분은 우편으로 하는 통신교리 또는 인터넷으로 하는 사이버 통신교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통신교리에 대해서는 062) 380-2834로 연락주시면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자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을 한 가족으로 만나뵙기를 희망해 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