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성사
미사
미사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을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 23-25 참조) 예수님은 그리고 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미사는 바로 이를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에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위와 같은 말씀으로 축성할 때에 예수님 친히 사제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면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변화시키십니다. 또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처럼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우리에게 영적 양식으로 내어주십니다. 그래서 미사를 ‘성체성사(聖體聖事)’라고 부릅니다.
성사
성사 생활의 시작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인 우리는 모두 이러한 생각을 지닙시다. 혹시 여러분이 무엇인가 달리 생각한다면, 그것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 같은 길로 나아갑시다. (필리 3, 12-16).”
성사란?
하느님은 인간 삶의 여정에 함께 하시면서 인생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그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한층 성숙한 당신의 자녀로 받아 들이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주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더 깊은 성화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로 드러내는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푸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립니다.
성사란 어떻게 드러나는가?
성사는 “외적 행위로 나타나는 증표로,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한국 가톨릭 대사전)”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심양면을 갖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일면인 마음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고, 그 사람의 정신이나 지식 역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의 부수적(일면적, 지엽적, 단편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 제일주의, 신학의 지식이 풍부하면 열심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전체적 의미, 곧 조화된 전 인격을 무시한 생각입니다.
정상적 신앙인은 인간다운 자세로 하느님과 교류를 가지므로 인격의 전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에만 관계하고 국가는 육신에 관계 한다.’는 말은 문장은 되지만 맞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활, 인격, 존엄성, 인간의 가치관들이 항상 함께 자리하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에는 인생살이의 모든 면들을 내적과 외적으로 표시하게 되었는데 이를 성사라 설명합니다.
성사들의 표징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표징들로서는 교육적 역할도 합니다.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립니다.
성사들은 은총을 베풀지만, 성사 집전을 통해 신자들이 은총을 받고,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사들의 표징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명을 이해하고, 또한 그 생명을 보양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지극한 열성으로 자주 받는 것이 좋습니다(전례헌장 59).
거룩한 표지(Sacred Signs)인 성사
전례교육은 “아이에게 십자성호를 옳게 긋는 것을 가르치고, 켜놓은 촛불에서도 아이의 속마음을 말해주는 표상을 알아보게 하고, 마음과 몸으로 아버지 집에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그런 어머니 역할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심미적 입장에서가 아니고, 또 어떤 생각을 동작으로 그저 꾸민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성사는 마치 부모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정말로 생활을 함께 하는 스승의 역할과 같습니다.
주일을 주님을 위한 참 주일로, 하느님의 식탁에 초대받는 참 축제로 느끼게 하는 성사입니다.
교회 생활의 한 해, 그 계절, 성당 문과 종, 성당의 공간과 행렬, 이 모든 것이 거룩한 표지이므로 산 체험 속에 파고들어 자리 잡아 깨우쳐주는 그런 스승일 것이다(“거룩한 표징” 머리말에서).”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들이 또한 우리에게 삶의 참된 표상이나 신앙생활의 모델로 등장하여 역사에 남게 된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이러한 분들의 삶은 인생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어 영원한 진리를 따라가며 천상을 목표로 살아가신 신앙의 표본들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생애야말로 하느님의 거룩한 표지가 인간의 생애라는, 감지할 수 있는 역사적 실제 사실로 제시된 성사입니다. (로마 8, 17; 콜로 1, 24 ; 2티모 2, 11- 12; 1베드 4, 13).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품성사를 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하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정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현대에도 다시 살아계신 것 같이 성사를 통하여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로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와 결실, 풍부한 사랑의 신비를 표시합니다(에페 5, 32). 이 혼인 성사의 힘으로 부부생활과 자녀 출산과 그 양육을 통해서 서로 성덕에 나아가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그들의 신분과 역할에 고유한 은혜를 받습니다(1코린 7, 7). 이 혼인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세세에 영속시키게 됩니다.
교회의 칠성사(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11)
신도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회에 결합되었고, 그리스도교적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호를 받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재생되었기에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됩니다. 견진성사로 신도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며 옹호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됩니다. 성체의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신도들은 신적 희생을 하느님께 바치며 자신을 또한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찬 때에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신도들은 하느님 백성으로 구체적 일치를 표현합니다. 고해성사로 신도들은 하느님께 잘못한 죄를 용서 받으며 죄로 상처 입혔던 교회 앞에서, 새로워진 사람으로 교회와 다시 화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보다 나은 완숙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병자들에게 성유를 바르는 사제들의 기도로써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현양되신 주님께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도록 청하며(야고 5, 14-16). 또한 병자들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연스럽게 결합시켜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이(느낄 수 있게)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성사인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성사이신 그리스도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의 위격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두 가지 본성을 지닌 한 위격이시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므로 그가 하시는 행위는 하느님의 의도이시며 인간의 행위라 하였습니다. 인간인 예수님은 인간의 존재를 따라 하느님의 생명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가르침은 곧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점을 예수님 자신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 29,-30).”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의 감정을 나타낸 표현을 본다면,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3-36).”하는 점에서 참으로 인간다운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면으로 우리에게(감정을 지닌 인간들) 모범이 되신다는 것입니다.